문규현 신부님과의 인연.. 그 첫번째 이야기
- Posted at 2008/09/08 10:56
- Filed under 살면서..
안녕하세요. 정청래입니다. 여러분 문규현신부님 아시죠. 문신부님께서 <오체투지>중이십니다. 참 문규현신부님 생각만 하면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지리산 노고단에서 오체투지중인 문규현신부님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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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신부님은 무엇을 위해 이토록 힘든 고행의 길을 나섰습니까?
새만금 반대를 위한 두달 반 동안의 3보1배 때도 제가 미안해서 여의도를 지나실 때 못 갔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신부님은 또다시 저를 한없이 미안하게 만드시는 군요."
문규현 신부님을 존경하고 그리워하며 2003년도에 썼던 저의 졸저 <사람만이 사람사는 세상을 만든다>의 문규현 신부님 편을 소개합니다.
저의 주례선생님이시기도 한 문규현 신부님. 신부님 주례덕분으로 첫째 아들은 한백(한라에서 백두까지), 둘째 아들은 한결(그 마음 변치말고 한결같아라), 셋째 아들 한솔(늘 푸른 소나무처럼)을 낳아 기르고 있습니다.
신부님 아프지 마세요. 건강하세요. 죄송합니다.........
신부님 나의 신부님!
문 신부님을 만난 곳은 서울구치소다. 1989년 10월 13일 미대사관저 점거 투쟁으로 가게 된 서울구치소에는 소위 시국사범들을 비롯하여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인사`’들이 굉장히 많았다. 그런데 누군가 “`문규현 신부님도 여기에 계시다`”고 말했다. 반가운 마음에 아침운동 시간이 되자마자 신부님을 찾아갔다. 당시 신부님은 옥중투쟁위원회 대표로 비교적 자유롭게 지내셔서 바로 만날 수 있었다. 무작정 달려가 반갑게 인사했다.
“`저, 이번에 미대사관저 들어갔다 온 정청래입니다.`”
미대사관저 점거 투쟁도 꽤 유명한 사건이라 그랬는지 신부님은 망설임 없이 대꾸했다.
“`아, 그래? 나는 문규현이야. 근데 너 김치 있어?`”
신부님은 무슨 말인가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나를 당신 방으로 데려갔다.
“`내 방에 김치가 많은데 같이 나눠 먹자.`”
김치를 주섬주섬 챙겨주면서 “`이 김치 먹고 열심히 살아라.`”고 말하는 신부님을 보고 있자니 울컥 목이 메었다. 그렇게 소원하던 문 신부와 첫 만남이었다.
아무리 신부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사람을 소박하게 감동시키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신부님의 소박하고 정겨운 마음도 인상적이었지만, 말을 건네며 나를 쳐다보던 그 눈매는 평생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희디흰 흰자위에 정갈하게 얹힌 까만 눈동자, 티 하나 없는 눈매는 청정무구 자체였다. 눈은 거짓말을 못한다고 하던가. 욕심 한 자락 걸치지 않은 신부님의 눈이 지금도 선하다.
그 후로도 신부님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구치소에서는 취침나팔이 울리면 잠이 오지 않아도 자야 한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시국사범들은 함께 살고 투쟁하고 있음을 끊임없이 확인하고자 했다. 이름하여 ‘`민중의 소리`’ 방송. 이름처럼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작은 권리 하나도 싸워 얻어야 하는 구치소에서는 대단한 일이었다. 취침나팔이 울리면 모두 화장실에 붙어 창살을 부여잡고 집회를 시작한다. 자신이 읽은 신문 내용이나 바깥소식들을 나누는 것이다.
방 사이의 거리 때문에 마치 선동을 하듯 소리를 질러가며 진행되는 집회지만 사회자도 있고 순서도 있다. 마지막엔 ‘`부정비리 5공 학살 전두환 정권 타도하자`’ ‘`반통일적 부정비리 노태우를 처단하라`’ 등의 구호로 끝을 맺는다.
밖에서 한 경험 때문에 그곳에서도 사회를 보게 된 나는 각방에 있던 사람들을 한 명씩 부르는 것으로 집회를 시작하곤 했는데, 이 부름에 답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흔히 ‘`거물`’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문 신부님은 ‘`거물 중에 거물`’이면서도 부를 때마다 천진하게 큰 소리로 대답했다. 특히 신부님의 이야기는 재미있고 유머가 가득했다.
당시 내가 있던 1관구에는 신부님 말고도 이재오, 허인회, 김윤태, 박인구, 김영종, 신동수 등이 있었고 나중에는 단병호 위원장도 들어왔다. 우리는 운동시간마다 열을 올리며 배구를 했다. 문 신부님은 생각보다 굉장히 배구를 잘했다.
작은 키로 180센티미터가 넘는 단병호 위원장의 위력적인 스파이크를 상대할 때면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을 보는 듯했다. 보통 오징어 등을 내기로 걸고 게임을 했는데 얼마나 악착같았는지 모른다.
경기 중에 서로 자기가 맞다고 우기며 삐친 척하기도 하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 슬며시 웃음 짓던 생각이 난다. 옥중에서도 끊임없이 싸워야 했던 어려운 시절, 신부님 덕에 웃으며 지냈다.
출소 후 문 신부님을 다시 만난 곳은 김제의 요촌성당이다. 1994년 여름 휴가 때 성당에 들러 결혼 주례를 서달라고 부탁했다. 결혼식 날이 일요일이라 미사 때문에 못 한다는 신부님에게 “`주례 안 서주시면 결혼 안 할 테니 책임지세요`”라고 협박까지 해가며 졸랐다. 결국 결혼 날짜를 옮기기로 하고 신부님의 승낙을 받았다.
“`아니 왜 신자도 아니면서 주례를 나에게 서라고 하는 거야?`”
“`신부님을 너무 좋아하니까요.`”
물론 내 마음속에는 그보다 더 많은 대답들이 있었다. 처음 만날 때부터 소탈하고 욕심 없이 사는 신부님에게 반했고, 통일운동에 열과 혼을 바치는 신부님의 주례는 그 길로 매진하려는 내게 각오와 맹세를 다지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2편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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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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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군요..주례를 서 주실정도면 대단한 인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