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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마음 아픈 이런 기사를 많이 보겠네요.
책임있는 정치인의 한사람으로서 죄송합니다.
어떤 분이 코스피 747이 달성될거라는 댓글을 다셨네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대선에 패배해서 죄송합니다.
오늘은 이 말씀만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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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증권사 영업점 직원은 "적립식 펀드계좌로 들어가는 자동이체를
끊어버리는 고객들이 나오고 있다"며 "투자자들이 시장을 전혀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권정보사이트인 팍스넷에도 "미친 세상", "주식이 나를 가지고 논다"
"항복문서" 등 코스피지수 1,000선 붕괴에 대한 누리꾼들의 절망 목소리가 들끓었다.

한 네티즌은 '탐으로 인한 절망감'이라는 글에서 "외국유학을 위해 모은
5천만 원과 대출 등을 통해
총 1억 원을 투자했다가 주가폭락으로 반대매매를
당해 이제 손에 쥔 돈은 200만 원에 불과하다. 

꿈꿔왔던 유학이 물거품이 됐고, 집에서는 밥만 축내는 자식으로 변했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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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청래입니다. 여기는 베이징입니다.

중국에 학교를 보내고 있는 지인 한분이 찾아 왔습니다. 두 아이를 모두 중국의 학교에 보냈는데 베이징에 있는 대학들을 구경시켜 준다고 왔습니다. 우리 세대는 미국 중심적 사고와 지향이 주류를 이루었다면 이 아이들 세대는 중국이 중심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아이들을 보냈답니다.

유창선박사님! 정치 평론가 유창선박사께서 살벌한 제목을 걸고 제가 며칠 전에 썼던 글에 대해 비판을 해 놓으셨더군요. 사실 저는 유박사님을 언론을 통해 고명하신 존함정도는 알고 있지만 일면식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불초소생의 글에 관심을 표명해 주신 것에 먼저 감사드립니다.

또한 제가 속한 민주당에 대해 망하지 않는 길에 대해 애정을 갖고 조언해 주신 것에도 깊은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그런데 유박사님께서는 제 글에 대해서 반쯤은 맞고 반쯤은 틀렸다며 제목도 결론도 <정청래 말대로 하면 민주당은 망한다.>로 끝을 맺으셨더군요. 쇼킹한 유박사님 글을 읽고 제 글을 다시한번 정독을 했습니다. 두 번 세 번 읽고 또 읽었습니다. 오랫동안 생각하고 있던 주장이지만 꽤 긴 글이라 혹시 오타가 있지는 않았는지 표현력이 부족한 곳은 없는지 차분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유박사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유박사님의 주장을 요약하면 대략 이런 것이더군요.

"반대만 하면 답이 없다. 민주당이 살려면 대안을 제시해야 하지 않느냐?

개혁블록 민주연대가 떴지만 식상하게 민주와 반민주로 나뉘어 싸우자는
구태의연한 말만 하냐?"

라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따끔하게 대안(?)을 제시해 주셨더군요.

<협력’과 ‘반대’ 사이의 이 같은 이분법적 선택이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고 싶다. 모두가 민주당 자신이 주체가 아니라 수동적인 존재임을 전제로 하고 있는 발상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 협력할 것이냐 반대할 것이냐 하는 수동적인 관점이 아니라, 자신의 무엇을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이냐 하는 주체적인 관점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

자신의 것’이란 무엇인가. 집권세력의 것에 반대할 때는 반대하되, 그 대신 자신의 대안을 제시하며 반대하는 ‘창조적 반대’를 말하는 것이다.>


유박사님! 제가 뭐 잘못 요약한 것은 아니지요? 자 그럼 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유박사님! 제가 말하는 <반대>의 가치를 혹 예전 한나라당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던 <반대를 위한 반대>로 오해하셨다면 제 글의 일독을 다시 권유하고 싶습니다. 제가 주장하는 <반대>의 개념을 어떻게 규정했는가? 다시 천천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특히 일제시대(일본반대 독립운동), 전두환정권(독재반대 민주화운동) 부분....그리고 헤겔의 논리.

제가 말하는 반대는 국가 재앙을 불러 올 수 있는 미국산 쇠고기 문제, 경부 대운하, 건강보험 민영화 등 국민들이 기를 쓰고 반대하는 문제에 왜 반대를 소홀히 했냐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반대의 지점에 있는 대안이 무엇이냐고 묻는 다면 이것은 우문이지요.

"미국산 쇠고기 30개월 이상 무방비로 푼 것을 재협상해서 국민건강권을 보장하라!"
대안입니다. 건강보험 민영화해서는 안 되고 대운하 중단하라! 이것이 대안입니다.

유박사께서 "반대는 대안은 될 수 없다."고 주장하신다면 저는 그 대목에서는 반박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습니다.

저는 민주당이 쇠고기 촛불시위의 "반대국면"에서 국민과 함께 제대로 반대물결에 동참하지 못한 것이 민주당이 대안 정당으로 인정받지 못한 주요한 이유이고 지지율 정체 현상의 주범이라고 생각하는데 유박사님은 동의하기 어렵습니까?

저는 100일이 넘게 거의 매일 촛불현장을 지켰습니다. 저는 언론을 통한 정치평론을 보거나 학자들의 고담준론을 공부해서 촛불 정국을 이해한 것이 아니라 현장의 국민들의 아우성을 근거로 민주당의 각성을 촉구한 것입니다.

제가 주장한 것을 진정 국민들은 원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5공식 민간독재로 가려 하는데 이것을 대차게 반대하고 막아야 되는 것이 아니냐? 민주당은 도대체 뭐 하고 있느냐? 이것이 국민의 목소리였습니다.

유박사께서 말씀하신 감세정책, 부동산 문제, 주택 정책, 종부세 문제, 금융위기 등은 사실 최근에 불거져 나온 문제입니다. 이 부분은 유박사께서 주장하신 부분이 반쯤은 맞습니다.

자 그런데 세심하게 보십시오. 예를 들겠습니다. 지금 이 현 정부는 참여정부에서 만들어 놓은 종부세를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유박사께서 상위 몇 % 부자들만 혜택이 돌아가고 서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종부세 완화에 설마 반대는 하지 않으시겠지요?

그럼 이것을 강하게 반대하고 현행을 유지하자고 하는 것이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책 아닌가요? 그런데 이것을 우선 반대하지 않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새로운 논리학이 있다면 그것을 저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그것이 더 효과적이라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경제 정책 뿐만 아니라 언론장악 특히 방송장악 부분은 어떻습니까?

저는 이명박 정부가 가장 기를 쓰고 손아귀에 넣으려 하는 것을 방송으로 보았고 그것을 올해 초창기부터 경계하고 경고해 왔습니다. 저의 손을 거쳐 만든 신문법(신문사 경영자료 공개, 신문 방송겸영 금지)을 없애려 합니다. 그럼 이것을 강력하게 반대하지 않고 달리 어떻게 대안을 제시한단 말입니까? 강력하게 반대하고 사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박사님 제가 좀 이상한가요?

현 정권은 법을 위반하면서까지 공영방송 KBS 사장을 끌어 내렸습니다. 그럼 이것을 반대하고 공영방송의 공적 가치를 사수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까? 틀렸습니까?

그럼 이 상황에서 반대를 건너 뛰어 어떻게 하라는 말씀인지 길이 있다면 한수 가르쳐 주십시오.
혹 "몸으로 싸우는 반대"를 반대하십니까?

그렇다면 박사님은 행동하는 양심은 아닙니다. 저도 말로 반대하고 싶지 어린 경찰들에게 두들겨 맞으면서 쪽팔리게 닭장차에 끌려가고 싶었겠습니까?

저는 박사님이 주장하신대로 <반대>와 <협력>이 이분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한 <반대>가 수동적인 관점이라고 주장하신 것에 전혀 동의할 수 없습니다. 현재의 시점에서 <반대>와 <협력>이 양립할 수 있는가? 저는 있다고 봅니다. 저 이분법으로 주장한 것 아닙니다. 잘한 것은 과감하게 박수쳐 주고 협력하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반대>가 수동적인 관점이라니요? 과도하게 저의 글을 소재로 쓰려니 <오버의 착각학>에 빠지셨습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되지도 않은 정책에 찬성하거나 반대도 찬성도 못하는 것이 저는 수동적이라고 생각하는데 동의하기 어려우시겠지요?

제가 전제했듯이 반대를 하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하고 모험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신공안 통치를 반대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놓고 치열하게 반대하는(조선일보까지 반대하는) 정치적 모험과 용기는 능동적인 관점에서 나오지 절대 수동적인 자세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유창선박사님! 글이 길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창조적 대안>을 제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미 창조적으로 창조된 가치를 훼손하려는 세력에 단호히 맞서는 것 또한 <창조적 가치>를 지키려 노력하는 것 또한 <창조적 가치>임을 잊지는 말아 주십시오.

국민들이 공권력에 두들겨 맞고 회칼로 테러를 당하는 세상이 왔습니다.
믿기지 않지만 21세게 대명천지 우리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사실입니다.



유박사님! 말을 맺으려 합니다. 저는 반대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소중하게 쌓아 올린 <민주주의의 가치>가 인구에 많이 회자되었다 해서 구태스럽다거나 식상 한 것은 아닙니다. 박사님은 이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세력에 단호히 맞서 싸우지 않는다면 민주당이 망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가 망할 수 있습니다.

유박사님의 말씀은 정치평론으로서는 반쯤은 맞을 수 있지만!! 절박한 국민의 정서와는 한참 동떨어져 있습니다. 책상위에서의 주장일 수는 있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만난 국민들은 유박사님처럼 점잔빼고 있으면 나라가 망할 것 같다고 말합니다. 새겨 두십시오.
 다음 정치 평론을 위해서..

추신: <정청래 말대로 하면 민주당 망한다.>로 제목을 다셨더군요. 저도 좀 세게 제목을 달았습니다. 비유와 상징의 역설로 이해해 주십시오.  다소 무례한 부분이 있었다면 혜량하시고 언제 기회가 되면 쐬주 한잔 하시죠! 평소 유박사님 좋아합니다. (^*^;)

추신2: 유창선님에 대한 추가적인 의견은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1989503&pageIndex=1&searchKey=&searchValue=&sortKey=depth&limitDate=0&agree=F 글을 통해 이어 이야기하려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다면 아고라의 글도 같이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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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푸틴 총리 면담 지연, 사전 양해 구한 것"

청와대는 2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이명박 대통령과의 면담에 예정보다 늦게 도착한 것과 관련, "회담 일정이 늦어질 것임을 사전에 양해를 구해왔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와 관련, "푸틴 총리는 미국 금융위기 및 유럽증시 폭락에 대한 러시아의 긴급대책을 TV 생방송으로 발표했다"며 푸틴 총리의 면담 지각사태가 외교적 결례 논란으로 비화하는 것을 차단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푸틴 총리와의 면담은 알려진 것과 달리 50분이 아닌 40분 늦게 시작됐다며 회담 시간은 1시간여 정도였다고 말했다.

모스크바=김성곤 기자 skzero@asiaeconomy.co.kr




푸틴은 금융위기 증시폭락 대책 세우고 발표하느라 정신 없는데 얄궂은 손님이 하나 찾아와서 기다리고 있었으니......푸틴은 또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이 양반은 금융위기 대책 언제 세워놓고 외국에 돌아 다니나?" (푸틴생각???)  

 

정치공황, 경제공황에 피눈물 흘리는 국민들 많겠네요.
그런데 이런 기사 앞으로 <방송뉴스>에서도 볼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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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중국으로 떠납니다.


안녕하세요. 정청래입니다. 무슨 말을 할까요? 제가 지금부터 드리려고 하는 말씀이 약간 두렵기도 합니다. 조국의 현실이 민주주의가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는데 너는 어디서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 국민들은 못 살겠다고 아우성치는데 미국발 금융위기가 쓰나미처럼 한국을 덮쳐 패닉상태인데 너는 어디서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 착잡합니다.

국회의원에 떨어지고 나서 정말 여러분들은 저에게 너무도 큰 위안이 되어 주셨습니다. 낙심해서 세상 원망하고 신세한탄이나 하며 보냈을지도 모르는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국민들은 참으로 위대하고 훌륭했습니다. 여러분들과 시청에서 광화문에서 KBS 앞에서 가슴으로 만난 몸뚱이로 말했습니다. 여러분들과 깊은 정도 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쳐진 제 어깨를 토닥이며 저에게 촛불을 들라고 명령해 주셨습니다. 5월 29일까지 임기를 마치고 나서도 여러분들이 있었기에 정말 현역 국회의원일 때보다 더 바쁜 나날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촛불을 통해 희망을 보았습니다. 쓰려져 있었던 저를 일으켜 주셨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와 민주주의가 먹고사는 경제 문제가 모두 여러분들의 힘에 의해 개척되어 간다는 평범한 사실을 다시한번 배우고 깨달았습니다. 국민이 스승이고 주인이다.

그런데 저는 잠시 여러분 곁을 떠나게 됩니다. 죄송합니다. 저 중국에 갑니다. 중국 베이징 인민대학교에 1년 과정 방문학자 자격으로 공부하러 갑니다. 몇 달 전에 준비한 것이지만 최종적으로 방문 허가를 받고 참 많은 번민을 했습니다. 조국이 이 지경인데 꼭 떠나야 하는가? 촛불을 들었던 동지들 국민들이 눈에 밟힙니다. KBS 촛불들과 추진하던 많은 계획들은 뜻있는 분들이 할 것으로 믿습니다. 오체투지를 하고 계신 수경스님과 문규현 신부님, KBS 촛불들...참 많이 미안합니다.

원래 8월 말에 출국을 해야 하는데 1개월을 미뤘습니다. 주변의 동지들과 조심스럽게 상의를 했습니다. 처음엔 찬성과 반대가 엇갈렸습니다. 며칠 전에 주변 동지들과 허심탄회하게 솔직하게 상의를 했습니다. 출국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오는 것이 어찌 시한폭탄처럼 두려웠습니다. 결국 주변 분들이 잘 다녀오라는 격려의 말씀들을 많이 해 주셨습니다.

미국이 아닌 중국에 가는 이유는 이러 합니다. 미국 중심의 세계가 중국을 축으로 분화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떠오르는 용으로 중국이 부상할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 대륙의 한 귀퉁이의 휴전선의 철조망에 가로막힌 섬나라가 아니라 대륙의 일원으로 동참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미래상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통일된 대한민국으로 가기 위한 장애물을 제거 하는 것 그것이 저는 애국애족이라 생각합니다.

중국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을 아는 사람과 미국 코드에 맞추는 전문가는 넘쳐납니다. 그러나 정작 더 중요할 수 있는 중국에 대해서는 그런 전문가들이 많이 부족합니다. 중국을 알아야 하고 중국과 교분을 쌓는 것 그것이 개인의 재산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의 재산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중국을 아는 핵심 지름길은 중국말을 하고 중국 속에서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생활양식을 공유해 보는 것이 저는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로지 6개월 동안은 하루에 8시간 이상 중국말을 배우려 합니다. 그리고 나면 아마 인민대학교에서 교수 자격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강의를 하게 됩니다.

북경대에서 한국어를 50년 강의한 위욱승 교수라는 분이 계십니다. 위교수 제자들이 현재 모두 중국의 전 대학에서 한국어 교수가 되었습니다. 현역 시절 북경대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이 제자 교수들이 저를 찾아와 “우리 스승인 위욱승교수님 소원하나 들어 주십시오. 대한민국을 위해 50년간 노력했는데 대한민국 대통령 훈장 하나 받게 해 주십시오.”

결국 전례가 없었던 것을 새로 만들어 2005년 10월 9일 한글날 기념식 때 TV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중국인인 위욱승교수는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 대통령 부관문화훈장을 받았습니다. 80이 넘은 노교수께서 저를 끌어안고 어린 아이처럼 좋아했습니다. 그 순간 제가 국회의원 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위교수는 한국 중국 통 털어서 퇴계 이황선생 전문가입니다. 곧 위교수가 쓴 이황 전집이 출간 된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중국에 이런 영향력 있는 분들이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저는 그것이 애국 외교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휴전선이라는 철조망에 가로막힌 섬나라를 탈피해 대륙으로 뻗어나가는 데는 중국의 협조가 받듯이 필요합니다. 서울을 출발한 기차가 평양을 거쳐 베이징을 거쳐 파리까지 가는 일 그것이 우리의 미래비젼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위해 매진해야 합니다. 손기정 선수가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베를린 올림픽에 가서 마라톤 금메달을 땄던 역사적 사실을 현실로 변화시켜 내야 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조국 안에서 조국을 보았습니다. 이제 잠시 사랑하는 조국 사랑하는 여러분 곁을 잠시 떠나 조국 밖에서 조국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몸은 떠나지만 마음만은 두고 갑니다. 몸이 떠나 있어도 여러분들을 만나는 일은 소홀하지 않겠습니다. 허락하실지 모르지만 저는 여러분들이 파견한 베이징 특파원입니다.

베이징에서 바라 본 조국, 중국에서의 한국에 대한 생각들을 숨김없이 베이징 특파원 자격으로 글을 쓰겠습니다. 낙선 이후에 그랬듯이 중국 베이징에서 외롭고 쓸쓸할 때마다 조국에 있는 여러분들을 생각하겠습니다. 그리고 힘을 내서 열심히 생활하겠습니다. 여러분 내일 오후 중국행 비행기를 탑니다. 여러분들의 눈망울을 기억하겠습니다.

 

다음부터는 중국 베이징 특파원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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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마지막 음성을 들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추석에 고향에들 다녀 오셨나요. 누구나 고향이있고 짧든 길든 부모님과 같이 살았던 고향은 언제 가도 푸근합니다. 저도 이번에 살짝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산소에 가서 인사를 드리니 예전 살아 생전의 부모님 생각이 사무치게 밀려 오더군요.

 

막내 일곱살 짜리 한솔이는 산소 꼭대기에 올라가서 큰 절하는 어른들을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더군요. 버릇없이 그런다고 제 엄마가 핀잔을 주자 슬그머니 내려와서 울먹물먹 하데요. 제 막내 아이처럼 우리들도 그런 시절이 있었을 겁니다. 유년의 꿈같이 행복했던 기억입니다.  

 

뉴스에 보니 미국발 금융위기가 쓰나미처럼 우리나라를 할퀼것 같다는 불길함이 밀려옵니다. 열심히 노동해서 한푼두푼 모아가는 서민들은 남의 애기처럼 들릴지 모르나 이것이 모두 서민들이 돈놀이의 피해자가 됨은 불문가지입니다. 앉아서 당하고 눈뜨고 당하고 알면서 당하고 모르면서 당하고 외국인 투자자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한국의 주식시장을 상상해 봅니다.

 

정치도 경제도 막막합니다. 정치도 경제도 제 막내 아이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던 그 시절이 차라리 행복했다면 이것이 말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초국적 금융자본이 이제 우리네 삶의 전부를 틀어쥐고 사는 세상...어린 아이처럼 순수한 눈만 갖고 살 수 없는 세상에도 순수함은 잃지 말아야 겠습니다.     

 

돌아가고 싶어도 이제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시간이지만 우리가 살았던 그 시절이 그토록 그리운 것은그 곳에 사람 냄새가 있고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부자였던 풋풋한 인정이 있어서가아닐까요? 세상사 잊고 잠시 상념에 젖어 그리운 부모님도 불러보고 이제는 자주 만날 수 없는 고향의 친구들도 불러 봅니다.

 

예전에 시골 친구와 어머니를 보고파하며 썼던 글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5월 5일,

학교 운동장에서 왁자지껄 요란하게 축구하는

성일이, 희탁이와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그 신나는 어울림과 함께 하지 못하고

지게를 지고 푸세식 화장실의 왕겨에 묻어 있는

똥냄새 나는 거름을 한 바작 짊어지고

앞산을 오를 때 시골의 고달픈 운명이

서러워서 눈물이 났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복숭아처럼 뽀얀 얼굴을 한 교회 전도사 댁 딸아이가

우리 반으로 전학을 왔습니다.

마침 그날 전달에 본 월례고사 시험 성적을 발표했는데

내가 1등을 했습니다.

그 아이는 확실히 나를 주목했습니다.

우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그 친구는 예배를 보고 나오는 길에 콩줄기를 잔뜩 지게에 짊어지고

기울어가는 지게를 넘어뜨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때 꼬장물 흐르는 내 얼굴을 보았습니다.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지만

이미 자존심이 구겨진 자국 위로 주르륵 눈물이 번지고 있었습니다.

중학교 때까지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이 너무 싫었습니다.

하필이면 이날을 골라 차범근이 축구를 하고

홍수환과 염동균의 권투 시합도, 김일의 박치기 레슬링도

내가 논밭에 나가 있는 그 시간에 합니다.

 




월요일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차범근이 몇 골을 넣었고,

김일의 머릿속에는 아무래도 쇠가 들어 있는 게 분명하다며

시끄럽게 떠들 때 속이 끓고 열받아서 눈물이 났습니다.

제법 공부를 열심히 한 중3 때 시상식 조회가 있는 날이면

내 대신 주번을 내보내고 교실을 지켰습니다.

우등생 수상자 명단에 어김없이 내 이름이 불리고,

수상자 대표에 내 이름이 한 번 더 불리지만

나는 그 자리에 없습니다.

 

대표로 상을 받는 그 자리에 정말 서고 싶지 않았습니다.

중1 때 맞춘 교복 바지가 해져 재봉틀로 드르륵드르륵 누빈 엉덩이를

여학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여간 창피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마이크를 통해 내 이름이 여러 번 불릴 때

교실에서 소리 없이 울었습니다. 

가끔 부모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렇게 못 사는 것도 아닌데 일요일에 남들처럼 일 안 하고 찬송가 끼고

교회에 가서 예배 보고 오후엔 신나게 배구를 하고 싶었습니다.
……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내가 조국과 역사가 만들어준 감옥에 들어가고,

그 충격 때문에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졌습니다.

6년간 간병을 하다 화병이 나서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고,

적막강산 같은 방에서 외톨이로 투병 생활하시던 어머니는

오랜만에 찾은 막내아들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이고 얘야, 내가 너를 중학교 때 일을 안 시키고 공부를 시켰으면 더 크게 됐을 텐데…

미안하다. 청래야.`”

이것이 내가 들은 어머니의 마지막 음성입니다.

2주 후 어머니는 의식을 잃고

한 마디 말씀도 못하시고

5남매와 손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셨습니다. 

추석이 왔습니다.

보고 싶은 어머니를 만나러 아이들 데리고 산소로 갑니다.

거기서 어머니의 마지막 말을 다시 듣습니다.

그럴 때마다 정말이지 목이 메어 눈물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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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할머니와 할머니만큼이나 늙은 고양이

    Tracked from mepay 쇼핑몰 전문 블로그 2008/09/16 22:39 Delete

    동무들과 어울려 푸르러가는 들판을 뛰놀다가 풀밭에서 반바지에 푸른 물이 들어 집으로 돌아오면.. 늙은 고양이 나비는 부뚜막에 앉아 봄볕을 즐기다 나를 맞아주고, 할머니를 까칠한 손으로 내 볼을 어루만져 주셨다. more.. 늘 논밭에 나가있던 부모님 대신 텅빈 집안에서 나를 맞아주는 것은 할머니와 할머니만큼이나 늙은 고양이였다. 어린시절, 그 시절부터 꼬부란 할머니의 허리는 마당의 한켠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나물을 다듬으시거나, 저녁 찬거리를 준비..

안녕하세요. 정청래입니다. 조계사에서 벌어진 촛불에 대한 테러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말만 듣고 있어도 소름이 쫘악~ 끼칩니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어찌 이런 일이 발생 할 수 있는지 모든 것이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입니다. 세상이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어제 지리산에서 오체투지를 하고 계신 문규현신부님과 수경스님께 다녀왔습니다. 문신부님께서 저에게 그러시더군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서 이거라도 한다.”

저는 신부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 짐작이갑니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이 시국에 성직자로서 온 몸을 던져 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사명감이 묻어났습니다.

세상을 구하고자 생명을 걸고 이 산하를 가장 낮은 곳에 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또한 우리 사회는 세상과 시대정신을 가로막고 생명에 대한 테러를 가하는 사람과 세력이 있습니다. 어제는 참으로 만감이 교차하는 우울함이 어깨를 짓눌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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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현장 사진



어제 오후 7시에 서울대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몇몇 분들이 테러를 당한 자식을 둔 가족들의 심정이 어떻겠냐며 위로라도 해드리자 했습니다. 처음엔 조금 망설였지만 그것이 조그만 위로라도 된다면 가야했습니다.

중환자 보호자 대기실에는 젠틀맨님을 건강을 걱정하는 촛불들과 형님이 계셨고 7시쯤에 어머니께서 오셨습니다. 어머님은 병상에 누워 사경을 헤매고 있는 아들의 눈을 보며 연신 조곤조곤 말씀을 하셨습니다. 매국노 저격수님은 젠틀맨님의 손을 잡고 하염없이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못하고 어머님 옆에서 젠틀맨님의 맑은 눈만 쳐다보았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혔습니다. 멀쩡한 생떼 같은 아들이 산소 호흡기를 쓰고 누워 있는 자식을 보고 있는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형님은 이마 꽂힌 칼을 본 후유증으로 동생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눈물만 흘리고 있더군요.

무슨 말을 할까?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젠틀맨님의 손을 잡고

“힘내십시오. 미력하나마 힘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그냥 그 말을 했습니다.
같이 면회를 갔던 사람들의 눈가엔 모두다 그렁그렁 눈물을 달고 면회실을 나왔습니다.

면회 후 형님과 어머님과 잠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어머님! 어머님은 아들의 건강만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아들이 원하는 것만 하시면 됩니다. 아들의 마음과 대화하면서 기도하시면 어머님과 아들의 소원대로 다 잘 되지 않겠습니까?

궂은일은 형에게 맡기시고 어머님은 아들의 건강만 생각하십시오.
제가 혹 도움이 된다면 형님하고 상의를 하고 돕겠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어머님은 강하고 위대했습니다.
제가 위로를 드리며 했던 말이 무색할 정도였습니다.

“당연하지요. 우리 아들 건강이 최고지요. 그리고 저는 이미 아들 뜻대로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우리 아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고 어제 조계사에 가서 기도도 많이 했습니다. 경찰들 얘기 안 들을 거예요. 우선 우리 아들 살리는 것이 첫째지요.”


형님은 보호자 대기실에서도 계속 우시기만 했습니다. 밖에 나와서 답배 한 대를 물고 저랑 잠간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머님 위로해 드리고 가족들 중심에 형님이 서셔야 합니다. 동생 듯이 무엇인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잘 압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또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어머님도 형님도 참 소박하시고 건강한 대한민국 국민들이었습니다. 저는 새삼 우리의 어머니는 참으로 강하고 지혜롭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들이 무엇을 위해 애를 썼는지 하루 만에 모든 것을 알아버리신 것 같았습니다. 어머님께서 그러시더군요.

“내 뱃속으로 낳은 자식이 이렇게 되었는데 내 아들은 내가 살리겠다. 아들의 뜻을 따르겠다. 그것만 생각하겠다.”



<신이 모든 것을 관여하기 어려워 이 땅에 어머니를 대신 보냈다.>


저는 오늘 그 어머님의 자식에 대한 사랑하심을 새삼스레 보고 왔습니다. 이 땅의 어머니들이 옳은 일을 하다 고초를 당하는 자식을 부둥켜안고 눈물 흘리는 그런 세상이 하루 빨리 종식되어 함도 새삼 느긴 하루였습니다.

젠틀맨님! 어머님을 위해서라도 건강하게 일어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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굼벵이처럼... 지렁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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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친구야
어제는 지리산에 갔었다.
언제나 그렀듯이 그 산은 말없이 나를 맞아 주었어.
남녘땅에서 가장 넓은 치마를 드리우고 넉넉하게
역사를 인간을 시대를 품어주던 그 품은
여전히 어린 자식을 품어주는 어머니 젖가슴이었어.

나무가 숲의 형편을 모르듯
물줄기는 나무의 목마름을 모른다.
산은 그냥 거기에 있고 나무가 모여 숲이 되고
그 숲에 풀벌레가 모여들듯
우리네 인간들도 살길을 찾아 떠난다.

친구야
머리가 있어도 현재를 바꿀 묘안이 없어.......
이마를 땅에 끌며 굼벵이처럼 지렁이처럼
그렇게 이마를 지렛대삼아 지리산을 내려왔다면
폭염이 아직 가시지 않은 지리산 치맛자락을 질질 끌며
지리산을 훼훼돌아 내려왔다면 너는 믿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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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누구를 한없이 사랑하는 것은 힘든 거야.
그만큼이나 누구를 원없이 미워한다는 것도 힘들지.
그래서 입이 있어도 혀가 있어도 말하기 어려운 거야.
심장의 고동이 아스팔트위에서 할딱할딱 멈추려 해도
가슴살 헤지더라도 그렇게 굼벵이처럼 지렁이처럼 가는 거야.

봄날 걸어서 가든 수레를 끌고 가든 자동차를 타고 가든
혼자서 가든 여럿이 가든 꽃가마 타고 나팔 불며 가든
아니면 엄동설한 허기진 배를 쥐고 활 들고 총 들고 지리산을 넘었던
그 길은 여전히 그 길이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다 한 핏줄 조상과 후손이야.

친구야
두 다리 멀쩡해도 걸어가지 않고 기어가는 사람들이 있단다.
아니 세 번 수술로 무릎 팍 물렁뼈가 없어도 기어가는 사람이 있어
다리가 있어도 걸을 수 없고 두 손이 있어도 무엇을 잡을 수가 없어
굼벵이처럼 지렁이처럼 한반도의 가장 밑바닥 땅을 가슴살 헤지며
이마에 돌멩이를 찍으며 지리산에서 계룡산까지 몸뚱이로 걸어서 간데.

친구야
그거 아니
한사람은 천주교 신부이고 한사람은 불교 스님이야
지리산에서 이념으로 죽고 죽이고 할 때도 종교는 있었어.
교회에 가면 교회에 나오라 하고 절에 가면 절에 나오래
천당과 지옥이 믿음의 차이가 아니라 종교의 선택에 있다고 하면
너는 그것을 믿겠니? 친구야.

친구야
지리산은 5천년동안 아군 편 적군 편으로 전쟁을 치룬 적이 있어
그러나 말이다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해봐
지리산은 한 번도 내편 네편 이었던 적이 없어
서로 피 흘려 싸우면 그 피를 받아 주었고 쫓기는 사람을 숨겨주었고
봄에 싹을 틔우고 가을이 되면 울긋불긋 풍성한 양식을 주었어.

친구야
참 힘들더라.
이마를 땅에 찍고 오장육부가 지열에 통닭구이처럼 비틀어지는
할딱거리는 오체투지 그 몸뚱이를 쳐다보는 지리산이 참 힘들더라.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종교와 종교가 손잡고 울고 있는지
시대가 지났어도 인간이 쳐놓은 욕망의 그물에 걸려
할딱거리는 육신의 물고기를 뜬 눈으로 지켜보는 것이....

친구야
낮이 지고 밤이 세상을 지배할 무렵
속세를 떠나 지리산으로 간 사람들 반대편으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한양 땅으로 돌아왔어.
속세의 땅 한가운데 섬처럼 떠 있는 조계사에서 웅성웅성 사람들이 모였어
누가 칼로 세 사람이나 찔렀다고 생명이 위태롭단다.

친구야
한 사람의 생명은 전체 세상이고 우주라며
한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그 눈을 감으면 세상은 사라진다며
생명을 위해 생명을 버리는 사람도 있고
순간을 위해 역사를 배신하는 사람들도 많아
너도 한번 가서 느껴봐


굼벵이처럼 지렁이처럼 몸뚱이로 기어서 가는 것이
얼마나 인간이 보잘 것 없고 얼마나 인간이 위대한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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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그래 너 많이 컸다.

안녕하세요. 정청래입니다.

저는 지금 구례 선은사로 가서 '사람과 생명, 평화의 길을 찾아가는 오체투지(五體投地) 순례' 중인 문규현 신부님과 수경 스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수행에 관한 9월 9일자 오마이 뉴스 기사를 올려 봅니다.

문규현 신부님 오체투지 취재 블로그: http://blog.ohmynews.com/dhcpxnw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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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사람과 생명, 평화의 길을 찾아가는 오체투지(五體投地) 순례' 이틀째. 지리산 속 고요한 등산로에 죽비가 울린다.


  "딱!"


순례단원들은 고개를 숙이고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는 땅에 몸을 던진다. 땅과 혼연일체가 되는 순간. 땅에 엎드려진 몸에서는 고통이 그대로 묻어난다. 거칠게 숨을 고르는 소리. 등은 크게 들썩이고, 입에서는 알 수 없는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가 베어 나온다.


마음 속으로 열을 세면 두 사람은 일어나기 위해 기척을 낸다. 그 순간, 몸을 일으키려는 두 성직자가 힘겨워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천천히 일어서는 순간 약간의 망설임이 느껴진다. 이들은 발걸음을 떼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아닐까. 살짝 들어올린 얼굴엔 모래가 붙어 있고 인상은 일그러져 있다. 누가 봐도 이들은 극한의 고통 속에 자신을 이기며 일어서고 있었다.


  "딱!"


불교환경연대 지관 스님이 다시 죽비를 친다. 잡념은 다시 흩어진다. 수경 스님과 문 신부는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뒤따라오는 순례단원들은 고개를 든다. 다시 묵묵히 세 걸음. 두 성직자는 땅에 몸을 던지고 순례단원들은 고개를 숙인다.


불교의 전통 타악기 죽비는 무명의 소리를 일깨우는 악기다. 죽비 소리에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 허물을 돌아보게 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힘겨운 순례 길에서 이들이 돌아보려 하는 것은 무엇일까. 왜 이들은 고통을 자처하며 고통 속에서 평화를 찾아나선다고 하는 것일까.

 

▲휴식 시간에도 명상에 잠긴 수경 스님.

 

▲고행으로 몸이 힘들어도 평화롭다는 문규현 신부. 그는 "모든 것을 버리면 평화롭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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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국민들이 이명박 대통령님과의 대화를 한다고 합니다. 예전 같으면 보통 <국민과의 대화>라 명명하지만 오늘 대다수 언론이 전하는 제목은 <대통령과의 대화>입니다. 모름지기 대화란 상대방의 의견과 주장을 상호 동등하게 존중하며 상호 침투하는 작용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있을 <대통령과의 대화>는 진행방식과 구성상 <대통령과의 질의응답> 정도가 걸 맞는 제목일 것 같습니다. 아니 일방적인 대통령의 선전선동이 전개될 것으로 저는 예측하고 있습니다. 

뻔한 주제에 뻔한 질문과 뻔뻔한 대답이 처음부터 끝까지 뻔하게 진행될 것 같습니다.  


공영방송 KBS를 장악했으니 KBS 앞은 전경들을 동원해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맘 놓고 KBS에 들어가면 사장 부사장 보도국장 줄줄이 나와서 인사할 것이고.... 따라서 저는 오늘은 콘텐츠보다는 대통령의 태도와 어법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보렵니다. 원래 말은 자신의 사상과 품위를 담는 그릇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님은 건설 공사판 전문용어를 많이 아시는 분이니 오늘 예측불허의 재미있는 용어들이 튀어 나올지 모릅니다. 의외로 개그콘서트보다 재미있을 수 있습니다. 아니 쇼킹하면서 서프라이즈한 막말과 비하가 거침없이 쏟아져 나올지 모릅니다. 원래 이 분은 기본적으로 존대 말을 할 줄 모르는 분입니다.

▦장면 하나(돌발영상)

어허허 박태환. 그래 축하한다.
개인적인 영광도 되지만 대한민국 모두가 좋아하고...
국민 사기가 많이 올라갔을 것 같아
우리 국력이 부쩍 크는 것 같아.

(박태환선수가 금메달을 따자 곧바로 전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반말을 해 댑니다. 일반상식으로는 “박태환선수 축하해요. 이번 쾌거는 박태환선수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전체의 영광입니다. 고생 많았어요. 그런데 컨디션은 어때요. 심기일전해서 다음 경기에서도 좋은 성적 거두기 바래요. 다시한번 축하해요.” 이렇게 해야 되는 것 아닌가요?)

▦장면 둘(돌발영상)

그렇게 힘도 있어 보이지 않는데....(최민호선수에게)
어~그래 아주 잘했어...(이봉주선수에게)
아주 애 썼어...(이승엽선수에게)
아~그래 김감독 고생 많았어....(김경문감독에게)


너 많이 컸다!!!!



(이 장면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중국에 억류해 놓고 한꺼번에 귀국시켜 청와대에 초청했을 때 악수를 하며 한마디씩 툭툭 던진 말입니다. 나이 40인 노장 이봉주선수에게 거침없이 반말을 합니다. 야구 대표 팀 고참인 이승엽선수에게는 어린 아이 대하듯하고 나이 50을 훌쩍 넘긴 김경문 감독에게도 거침없이 반말을 합니다. “잘 했어요.” “수고했어요.”가 상식이 아닌가요? 마지막 멘트 죽이지요? 너 많이 컸다. 이 말은 박태환선수에게 한 말입니다.)

오늘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예전에 건설 공사판전문 용어를 능가하는 어법과 비하와 막말의 전문 용어가 튀어 나오는지 한번 유심히 살펴보겠습니다. 참고로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그동안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전문 용어 시리즈를 몇 개 소개합니다.

건설 공사판 비하와 막말의 전문 용어들

▦비하학의 전문 용어


장애우 비하: “기본적으로 낙태에 반대하지만, 아이가 세상에 불구로 태어난다던지 할 경우 용납될 수 있다.”

여성 비하: “마사지를 받을 때 못생긴 여자를 고르는 게 좋다. 예쁜 여자는 이미 많은 남자들이...못생긴 여자는 자신을 골라 준 게 고마워 서비스가 좋다. 인생의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중년배우 비하: “한물 살짝 가신 분들이 모여 가지고.. 시간이 남아서 누가 안 불러주나 감격해야 할 사람들.. 단역 나올 수 있는 사람들을 역 하나씩 주니까 얼마나 고맙겠어, 아마 공짜로 나오라고 해도 다 나왔을걸..”


▦막말학의 전문 용어


행정수도 막말: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에 대한 여야 합의안을 군대라도 동원해 막고 싶다.”


서울시 봉헌 파문: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거룩한 도시이며, 서울의 시민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며..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합니다.”

부안 핵 폐기장 관련 막말: “부안에서는 원자력 쓰레기 조금 묻는 걸 두고 2만 명이 난리를 치더라.”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임을 헌법 1조는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권력도 국민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런 국민에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거침없이 반말을 하는 대통령을 우리는 어떻게 할까요?

오늘 여자 대학생이 두 명 출연합니다. “어이~너 이름이 뭐야? 어 그래 그 이름은 누가 지어 줬냐? 그래 좋아 한번 말해봐!” “어이~유창선박사라 했나? 공부를 제대로 못했나본데 잘 알고 물어야지.....”

이 정도면 차라리 귀여운 수준인데 대화도중 “너 많이 컸다. 대통령 앞에서....”라는 말이 튀어 나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웃어야 하나요 울어야 하나요? 대통령 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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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청래입니다. KBS에서 막 들어 왔습니다. 예고해 드린대로 지금 <오체투지>중인 문규현신부님에 대한 이야기 2탄을 올립니다. KBS 앞에서 들은 얘기인데 몇분이 문신부님을 9일 찾아간다고 하네요.





저는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고 또 문신부님 그 처절한 모습을 안 보고 싶은 마음 절반입니다. 지난 3보1배 때도 한번 가 뵈었는데 마음이너무 무거워 혼난 적이 있습니다.

인간의 의지로는 감히 할 수 없는 문신부님과 수경스님의 오체투지에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1945년 1월 1일이 땅에 태어난 해방둥이 문규현 신부님.

그는 어쩌면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고스란히 안고 고행의 길을 가야 할 운명을 갖고 이 세상에 오신 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삶과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며 온몸으로 생명존중과 민주수호를 위해 오체투지를 하고 계십니다.

문신부님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제가 만나 본 문신부님 글을 올립니다. 아래의 글은 2003년에 제가 쓴 졸저 <사람만이 사람사는 세상을 만든다>의 문규현 신부님 편입니다.

 

1탄을 먼저 보실 분은 이리로 들어 가세요.


 

드디어 결혼 당일, 예식 시간이 다 되도록 신부님이 나타나지 않았다. 게다가 사회자까지. 안절부절못하는 사이 사회자가 나타나고 저 멀리서 헐레벌떡 뛰어오는 신부님이 보였다. 토요일이라 길이 많이 막히자 택시에서 내려 1킬로미터를 숨이 턱에 차도록 뛰어온 것이다.

그런 신부님을 보자 긴장이 풀리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감옥에 있을 때 우스갯소리를 잘하던 신부님이 깔끔한 신부복을 입고 단상에 서 있는 모습을 보니 절로 터지는 웃음을 참을 길 없었다. 신부님의 주례사 가운데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대목이 있다.

“`두 사람의 결합이 진보의 세계로 나가는 데 기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주례사치고는 아주 거창한 이야기다. 그러나 신부님이 진정 우리 부부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대로 전해졌다. 미사를 세 건이나 ‘`펑크`’ 내고 김제에서 서울까지 올라와 주례를 서준 신부님은 누가 잡을세라 조용히 식장을 떠났다.

그후로 몇 차례 신부님을 만나러 갈 때마다 매일 보는 사람처럼 편하게 맞아주었다. 신부님은 욕쟁이로도 소문났다. 우선 웬만한 사람에게는 반말부터 나간다.

“`야 이놈아, 밥 좀 가져와라.`”

술 좋아하는 신부님은 “`술 좀 그만 드시라`”는 신도들의 핀잔에도
기가 죽는 법이 없다.

“`지랄하네. 한 잔 더 가져와.`”


처음에는 아무도 그의 말을 상스럽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까르르 웃으며 재미있어하는 것이 이상했다. 여러 차례 오가는 대화를 곁에서 들으며 깨닫는 것이 있었다. 신부님의 욕은 너무도 정겨운 대화의 양념이자 넘치는 사랑의 언어였다.

똑같은 말이라도 마음가짐과 소통의 정도에 따라 흉도 되고 정도 되는 모양이다. 권위를 가장한 허위의식은커녕 스무 살 아래인 내게도 친구의 정을 느끼게 하는 신부님을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 지금도 “`미친 놈`” 하는 신부님 목소리가 이토록 그리운가 보다.

신부님이 형인 문정현 신부님과 함께 『한겨레21』이 정한 ‘`올해의 인물`’로 뽑히던 날의 일이다. 전주 서학동 성당에서 만난 문 신부님은 수염을 길게 기른 모습이었다. 농담 삼아 나이도 새파랗게 젊은 분이 수염은 뭐냐고 묻자 국가보안법이 철폐될 때까지 깎지 않을 거라고 했다.

무슨 말씀인가 했더니 앞으로 반전평화와 주한미군 문제는 문정현 신부님이 주력하고, 자신은 새만금 반대 투쟁에 전력을 다할 텐데, 그래도 ‘`국보법 철폐`’를 위한 간절한 마음은 내려둘 길 없어 수염을 깎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 마음자리를 가진 사람이 이끈 새만금 반대 투쟁. 당시 어느 누구도 80퍼센트 이상 공사가 진행된 새만금 개발이 ‘`꼴통 신부`’의 합류 정도로 중단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신부님에게는 가능한 일인지 아닌지가 중요하지 않다. 해야 하는 일이라면 두려움 없이 싸워가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신부님이 수경스님과 함께 부안부터 서울까지 삼보일배`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 양반이 정말 죽을 작정을 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오래전 함평 고구마 싸움 때도 보았듯이 신부님은 아무리 얻어맞아도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자신이 말한 것은 꼭 해내며, 해야 할 일에 핑계가 없고 두려움이 없는 분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그가 얼마나 야속했는지 모른다.

‘`오래오래 살면서 할 일이 얼마나 많은 분인데, 이거 하다 죽으면 어떡하려고!`’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에 올라오는 속보와 손과 무릎이 해진 사진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모른다. 게다가 삼보일배에 묵언수행까지 하며 서울에 진입해 국회를 거쳐 신촌을 지나던 그 행렬을 맞으러 가자는 사람들의 권유에 나는 선뜻 나설 수 없었다.

상상할 수조차 없는 고행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 앞에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를 어떻게 꺼내며, 어찌 얼굴을 들고 쳐다볼 수가 있을까. 몇 년 동안 이 일을 입에 담는 것조차 힘들 거라는 생각뿐이었다.

언제나 가장 뜨거운 투쟁의 한가운데서 신부님을 볼 수 있다.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이 있는 곳이 바로 신부님의 성당이다. 새만금 투쟁 뒤 부안성당으로 옮긴 신부님에게는 위도 핵폐기장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또다시 뼈만 앙상한 몸에 쇠사슬을 감은 신부님을 TV에서 보았다.

‘`그래, 신부님은 이렇게, 이렇게 살다 가시겠구나….`’


신부님은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내가 아는 단어로 형용할 수 있는 분이 아니다. 그저 나는 신부님의 깊이를 100분의 1이나마 배우려고 노력할 따름이다.

 스무 살이나 어린 내게 항소이유서를 작성하는 데 필요한 책을 추천해달라던 겸손한 사람도, 감옥에서 김치 먹으라며 손을 잡아 끌어주고, 내 결혼식을 위해 먼길을 마다치 않고 달려와준 사람도, 우스갯소리 잘하고 신도들에게 욕하며 사랑받던 사람도,

 인간의 경지를 넘는 삼보일배와 쇠사슬을 감내하고 큰 나무처럼 서 있는 저 사람도 바로, 내가 가장 존경하는 문규현 신부인 것이다. ‘`못 말릴 양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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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청래입니다. 여러분 문규현신부님 아시죠. 문신부님께서 <오체투지>중이십니다. 참 문규현신부님 생각만 하면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지리산 노고단에서 오체투지중인 문규현신부님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보았습니다.





문규현 / 신부
출생 1945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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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신부님은 무엇을 위해 이토록 힘든 고행의 길을 나섰습니까?

 

새만금 반대를 위한 두달 반 동안의 3보1배 때도 제가 미안해서 여의도를 지나실 때 못 갔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신부님은 또다시 저를 한없이 미안하게 만드시는 군요."

 

문규현 신부님을 존경하고 그리워하며 2003년도에 썼던 저의 졸저 <사람만이 사람사는 세상을 만든다>의 문규현 신부님 편을 소개합니다.

 

저의 주례선생님이시기도 한 문규현 신부님. 신부님 주례덕분으로 첫째 아들은 한백(한라에서 백두까지), 둘째 아들은 한결(그 마음 변치말고 한결같아라), 셋째 아들 한솔(늘 푸른 소나무처럼)을 낳아 기르고 있습니다.  

 

신부님 아프지 마세요. 건강하세요. 죄송합니다.........

 

 


신부님 나의 신부님!

 

문 신부님을 만난 곳은 서울구치소다. 1989년 10월 13일 미대사관저 점거 투쟁으로 가게 된 서울구치소에는 소위 시국사범들을 비롯하여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인사`’들이 굉장히 많았다. 그런데 누군가 “`문규현 신부님도 여기에 계시다`”고 말했다. 반가운 마음에 아침운동 시간이 되자마자 신부님을 찾아갔다. 당시 신부님은 옥중투쟁위원회 대표로 비교적 자유롭게 지내셔서 바로 만날 수 있었다. 무작정 달려가 반갑게 인사했다.

“`저, 이번에 미대사관저 들어갔다 온 정청래입니다.`” 
미대사관저 점거 투쟁도 꽤 유명한 사건이라 그랬는지 신부님은 망설임 없이 대꾸했다.
“`아, 그래? 나는 문규현이야. 근데 너 김치 있어?`”

신부님은 무슨 말인가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나를 당신 방으로 데려갔다.
“`내 방에 김치가 많은데 같이 나눠 먹자.`”
김치를 주섬주섬 챙겨주면서 “`이 김치 먹고 열심히 살아라.`”
고 말하는 신부님을 보고 있자니 울컥 목이 메었다. 그렇게 소원하던 문 신부와 첫 만남이었다. 

아무리 신부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사람을 소박하게 감동시키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신부님의 소박하고 정겨운 마음도 인상적이었지만, 말을 건네며 나를 쳐다보던 그 눈매는 평생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희디흰 흰자위에 정갈하게 얹힌 까만 눈동자, 티 하나 없는 눈매는 청정무구 자체였다. 눈은 거짓말을 못한다고 하던가. 욕심 한 자락 걸치지 않은 신부님의 눈이 지금도 선하다. 

그 후로도 신부님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구치소에서는 취침나팔이 울리면 잠이 오지 않아도 자야 한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시국사범들은 함께 살고 투쟁하고 있음을 끊임없이 확인하고자 했다. 이름하여 ‘`민중의 소리`’ 방송. 이름처럼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작은 권리 하나도 싸워 얻어야 하는 구치소에서는 대단한 일이었다. 취침나팔이 울리면 모두 화장실에 붙어 창살을 부여잡고 집회를 시작한다. 자신이 읽은 신문 내용이나 바깥소식들을 나누는 것이다. 

방 사이의 거리 때문에 마치 선동을 하듯 소리를 질러가며 진행되는 집회지만 사회자도 있고 순서도 있다. 마지막엔 ‘`부정비리 5공 학살 전두환 정권 타도하자`’ ‘`반통일적 부정비리 노태우를 처단하라`’ 등의 구호로 끝을 맺는다.

밖에서 한 경험 때문에 그곳에서도 사회를 보게 된 나는 각방에 있던 사람들을 한 명씩 부르는 것으로 집회를 시작하곤 했는데, 이 부름에 답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흔히 ‘`거물`’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문 신부님은 ‘`거물 중에 거물`’이면서도 부를 때마다 천진하게 큰 소리로 대답했다. 특히 신부님의 이야기는 재미있고 유머가 가득했다. 

당시 내가 있던 1관구에는 신부님 말고도 이재오, 허인회, 김윤태, 박인구, 김영종, 신동수 등이 있었고 나중에는 단병호 위원장도 들어왔다. 우리는 운동시간마다 열을 올리며 배구를 했다. 문 신부님은 생각보다 굉장히 배구를 잘했다.

작은 키로 180센티미터가 넘는 단병호 위원장의 위력적인 스파이크를 상대할 때면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을 보는 듯했다. 보통 오징어 등을 내기로 걸고 게임을 했는데 얼마나 악착같았는지 모른다.

 

경기 중에 서로 자기가 맞다고 우기며 삐친 척하기도 하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 슬며시 웃음 짓던 생각이 난다. 옥중에서도 끊임없이 싸워야 했던 어려운 시절, 신부님 덕에 웃으며 지냈다.

출소 후 문 신부님을 다시 만난 곳은 김제의 요촌성당이다. 1994년 여름 휴가 때 성당에 들러 결혼 주례를 서달라고 부탁했다. 결혼식 날이 일요일이라 미사 때문에 못 한다는 신부님에게 “`주례 안 서주시면 결혼 안 할 테니 책임지세요`”라고 협박까지 해가며 졸랐다. 결국 결혼 날짜를 옮기기로 하고 신부님의 승낙을 받았다. 

 

“`아니 왜 신자도 아니면서 주례를 나에게 서라고 하는 거야?`” 
“`신부님을 너무 좋아하니까요.`” 

물론 내 마음속에는 그보다 더 많은 대답들이 있었다. 처음 만날 때부터 소탈하고 욕심 없이 사는 신부님에게 반했고, 통일운동에 열과 혼을 바치는 신부님의 주례는 그 길로 매진하려는 내게 각오와 맹세를 다지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2편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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