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마지막 음성을 들었습니다.
- Posted at 2008/09/16 08:13
- Filed under 살면서..
안녕하세요. 추석에 고향에들 다녀 오셨나요. 누구나 고향이있고 짧든 길든 부모님과 같이 살았던 고향은 언제 가도 푸근합니다. 저도 이번에 살짝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산소에 가서 인사를 드리니 예전 살아 생전의 부모님 생각이 사무치게 밀려 오더군요.
막내 일곱살 짜리 한솔이는 산소 꼭대기에 올라가서 큰 절하는 어른들을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더군요. 버릇없이 그런다고 제 엄마가 핀잔을 주자 슬그머니 내려와서 울먹물먹 하데요. 제 막내 아이처럼 우리들도 그런 시절이 있었을 겁니다. 유년의 꿈같이 행복했던 기억입니다.
뉴스에 보니 미국발 금융위기가 쓰나미처럼 우리나라를 할퀼것 같다는 불길함이 밀려옵니다. 열심히 노동해서 한푼두푼 모아가는 서민들은 남의 애기처럼 들릴지 모르나 이것이 모두 서민들이 돈놀이의 피해자가 됨은 불문가지입니다. 앉아서 당하고 눈뜨고 당하고 알면서 당하고 모르면서 당하고 외국인 투자자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한국의 주식시장을 상상해 봅니다.
정치도 경제도 막막합니다. 정치도 경제도 제 막내 아이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던 그 시절이 차라리 행복했다면 이것이 말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초국적 금융자본이 이제 우리네 삶의 전부를 틀어쥐고 사는 세상...어린 아이처럼 순수한 눈만 갖고 살 수 없는 세상에도 순수함은 잃지 말아야 겠습니다.
돌아가고 싶어도 이제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시간이지만 우리가 살았던 그 시절이 그토록 그리운 것은그 곳에 사람 냄새가 있고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부자였던 풋풋한 인정이 있어서가아닐까요? 세상사 잊고 잠시 상념에 젖어 그리운 부모님도 불러보고 이제는 자주 만날 수 없는 고향의 친구들도 불러 봅니다.
예전에 시골 친구와 어머니를 보고파하며 썼던 글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5월 5일,
학교 운동장에서 왁자지껄 요란하게 축구하는
성일이, 희탁이와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그 신나는 어울림과 함께 하지 못하고
지게를 지고 푸세식 화장실의 왕겨에 묻어 있는
똥냄새 나는 거름을 한 바작 짊어지고
앞산을 오를 때 시골의 고달픈 운명이
서러워서 눈물이 났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복숭아처럼 뽀얀 얼굴을 한 교회 전도사 댁 딸아이가
우리 반으로 전학을 왔습니다.
마침 그날 전달에 본 월례고사 시험 성적을 발표했는데
내가 1등을 했습니다.
그 아이는 확실히 나를 주목했습니다.
우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그 친구는 예배를 보고 나오는 길에 콩줄기를 잔뜩 지게에 짊어지고
기울어가는 지게를 넘어뜨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때 꼬장물 흐르는 내 얼굴을 보았습니다.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지만
이미 자존심이 구겨진 자국 위로 주르륵 눈물이 번지고 있었습니다.
중학교 때까지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이 너무 싫었습니다.
하필이면 이날을 골라 차범근이 축구를 하고
홍수환과 염동균의 권투 시합도, 김일의 박치기 레슬링도
내가 논밭에 나가 있는 그 시간에 합니다.
월요일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차범근이 몇 골을 넣었고,
김일의 머릿속에는 아무래도 쇠가 들어 있는 게 분명하다며
시끄럽게 떠들 때 속이 끓고 열받아서 눈물이 났습니다.
제법 공부를 열심히 한 중3 때 시상식 조회가 있는 날이면
내 대신 주번을 내보내고 교실을 지켰습니다.
우등생 수상자 명단에 어김없이 내 이름이 불리고,
수상자 대표에 내 이름이 한 번 더 불리지만
나는 그 자리에 없습니다.
대표로 상을 받는 그 자리에 정말 서고 싶지 않았습니다.
중1 때 맞춘 교복 바지가 해져 재봉틀로 드르륵드르륵 누빈 엉덩이를
여학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여간 창피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마이크를 통해 내 이름이 여러 번 불릴 때
교실에서 소리 없이 울었습니다.
가끔 부모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렇게 못 사는 것도 아닌데 일요일에 남들처럼 일 안 하고 찬송가 끼고
교회에 가서 예배 보고 오후엔 신나게 배구를 하고 싶었습니다.
……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내가 조국과 역사가 만들어준 감옥에 들어가고,
그 충격 때문에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졌습니다.
6년간 간병을 하다 화병이 나서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고,
적막강산 같은 방에서 외톨이로 투병 생활하시던 어머니는
오랜만에 찾은 막내아들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이고 얘야, 내가 너를 중학교 때 일을 안 시키고 공부를 시켰으면 더 크게 됐을 텐데…
미안하다. 청래야.`”
이것이 내가 들은 어머니의 마지막 음성입니다.
2주 후 어머니는 의식을 잃고
한 마디 말씀도 못하시고
5남매와 손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셨습니다.
추석이 왔습니다.
보고 싶은 어머니를 만나러 아이들 데리고 산소로 갑니다.
거기서 어머니의 마지막 말을 다시 듣습니다.
그럴 때마다 정말이지 목이 메어 눈물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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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시리 눈물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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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프네요..
관련글이 될지 어떨지 몰라 글 한번 걸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