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입니다.. 바지가랭이가 흠뻑 젖은 하루
- Posted at 2008/09/26 12:35
- Filed under 조국 밖에서 조국을 보다
안녕하세요. 정청래입니다. 여기는 중국 베이징입니다.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라서 그런지 살갗을 때리는 빗방울이 제법 싸늘합니다.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그치고 나뭇잎 사이로 살랑 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가을 기운이 묻어납니다. 가는 여름이 심술을 부리는지 을씨년스럽게 부는 바람에 빗방울도 수직이 아닌 사선으로 우산 속을 파고듭니다.
중국은 봄가을이 없다고 합니다. 가을이 오는가 싶으면 어느새 겨울이 귀밑에 다가와 있다고 합니다. 10월이 대륙에 들어서면 얇은 옷 속으로 한기가 쳐들어 와서 감기를 옮기고 간다고 합니다. 대륙성 한랭전선이 베이징을 지나 평양을 지나 서울에 당도하면 베이징도 서울도 두꺼운 외투로 추위를 방어하며 종종 걸음을 치고 있겠지요.
어제 저녁 식사는 한국 유학생들과 중국 학생들이 즐겨 찾는다는 우다쿠(五道口)에 갔습니다. 북경대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대학원생과 인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선생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갔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은 즈춘리(知春里)라는 곳인데 세 개의 역을 지나니 서울의 신촌 같은 우다쿠가 나왔습니다.
모처럼 한국 음식을 먹자고 보쌈집에 들렀는데 2학기 개강 파티를 하는지 시끌벅적하며 건배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라지만 이미 북경은 자본주의 사회 못지않게 개방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개강 파티에서 선배가 후배들 챙겨주고 돈 내주고 하는 것이 보통 한국의 대학가와 다를 바 없는 것 같았습니다.
짧은 며칠이지만 중국의 대학 안에는 생기발랄하고 활기가 넘칩니다. 대학 안에 기숙사가 있고 대중목욕탕이 있어서 목욕하고 나오는 물기 가득한 대학생들의 모습이 약간 생경할 따름입니다. 제가 있는 인민대는 중국의 명문대학인데 학생들은 또 마치 고등학생들처럼 꽉 짜여 진 시간표로 움직이며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하는 모양입니다.
이수 학점이 160학점이고 3학년 때 대충 마치고 4학년 때 진로를 고민하기 때문에 수업 듣고 공부하느라 분주 한가 봅니다. 오늘은 아침 일찍 거류증을 받기 위한 필수 서류인 한국에서 발부받은 건강지단서를 중국 보건 당국에서 검증을 받았습니다. 그 확인증을 내고 첫 중국어 수업을 들었습니다.
약 20여명이 중국어 초급 수업을 받는데 교실 안은 그야말로 울긋불긋 총 천연색 피부 색깔입니다. 첫 날이라서 누가 누구이고 어느 나라 학생들인지 알 수 가 없습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왔고 언어는 다르지만 엄마에게 말을 배우는 아이처럼 한마디 한마디 중국말을 배웁니다. 한국말로 치면 "안녕하세요?. 엄마 아빠 1, 2, 3, 4...집이 어디예요?" 등등의 아주 초보적인 말들이지만 중국어는 단어보다 성조가 중요하므로 아무리 쉬운 단어도 그냥 지나치면 안 되겠더군요.
11시 30분 수업을 마치고 학교 내에서 도움을 받기로 한 인민대 2학년 학생이 교실 앞으로 오기로 했는데 보이 않았습니다. 그 학생도 11시 30분에 꽤 떨어진 건물에서 수업을 마치고 뛰어 오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베이징 하늘 아래에서 눈 빠지게 그 여학생을 기다리고 있는 제 모습이 어땠을까요? 멀리서 그 학생이 뛰어 오는데 어찌나 반갑던지...그러나 그 반가움을 입이 아닌 표정으로만 표현해야 하는 심정은 또 오죽했겠습니까?
이 학생과는 11시 30분부터 점심 같이 먹고 1시 30분까지 생각나는 것 궁금한 것 아무거나 물어보는 것이 수업입니다. 개인지도인 셈이지요. 가방 들고 학생식당에 갔습니다. 구름처럼 밀려오는 학생들 틈바구니에서 끼어서 이 학생이 타다가 주는 8원짜리 볶음밥을 먹었습니다.(한화 185원에 위엔화 1원이니 1500원 정도임. IMF때와 비슷해 중국의 한국 유학생들이 고통스럽다 하네요) 특유의 중국향 소스와 마늘잎과 줄기를 넣고 고추를 듬성듬성 썰어서 만든 일종의 김치볶음밥입니다. 맛있게 먹었습니다.
제가 만난 중국 학생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순수하고 때가 묻지 않았습니다. 이씨 성을 가진 이 학생은 밥 먹을 생각은 하지 않고 무엇이라도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려고 온통 긴장하는 빛이 역력합니다. 미안할 정도입니다. 밥을 먹다가 식당 벽에 붙어 있는 구호를 가르키며 물었습니다. 이 학생이 가르쳐 준 뜻은 이러 합니다. <동일세계, 동일 꿈>.
올림픽 현수막에 있는 <ONE WORID! ONE DREAM>. 이 현수막은 공사장 가림막에도 써 있고 길가의 깃발에도 새겨져 있습니다. 세계를 향해 야무지게 진출하는 중국의 속뜻이라 생각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세계의 중심이 자신들이라는 중화사상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라면 저의 지나친 억측일까요?
그 학생과 헤어지고 처음으로 혼자의 힘으로 30분 정도 걸리는 베이징의 거리를 걸어서 집으로 왔습니다. 얼굴 모양으로는 중국인인지 한국인지 구별이 안 갑니다. 그러나 베이징의 중심 거리를 초급 중국어 교재를 넣은 가방을 메고 걷고 있는 나는 분명 한국인입니다.
세계인구 중 5명중 1명은 중국 사람입니다. 13억(비공식 16억이라는 설도 있음) 인구가 쓰고 있는 언어, 13억 인구가 꿈틀대며 하나의 세계로 질주하고 있는 2008년 9월 22일. 대한민국의 가치는 무엇이며 대한민국은 어디로 무엇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가?
을씨년스럽게(이 말은 일본의 을사늑약이 있던 해의 비유어)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듯이 대한민국 국민은 얼마나 두꺼운 외투를 준비하고 얼마나 튼튼한 비바람에 찢어지지 않는 우산을 준비해야 하는 걸까? 어젯밤 우다쿠에서 밥을 먹고 나오는데 찢어진 우산 사이로 들여 치는 비에 바지가랭이를 흠뻑 젖고 난 후의 후회였습니다. 좀 더 튼튼하고 큰 우산을 준비해 올걸....
추신: 유모차부대의 눈물의 기자회견을 보았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전두환의 탄압이 있었기에 운동세력이 더욱 성장했다고 민주화를 성공시켰다는 역설이 있습니다. 학생탄압, 종교탄압, 언론탄압, 교과서 이념탄압에 이제 엄마탄압까지...우리의 승리가 어쩌면 더 빨리 오고 있다는 방증의 역설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곧 망할 겁니다. 질기게 견디기만 하면 저들의 무리한 헛발질로 우리를 전부분에서 똘똘 뭉치게 하지 않을까요? 이런 말도 있습니다.
조금만 더 쳐 다오! 시퍼렇게 날이 설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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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혼자 외치는 구호;
<엄마탄압하면 불효자식되고, 국민탄압하면 명이박한 나라된다!!> #명(命)이(李)박(薄)한나라
여러분 사랑합니다. 짜이찌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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