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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청래입니다. 여기는 중국 베이징입니다.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 하더니 날씨가 꽤 추워졌습니다.
하늘도 희뿌연 상태라서 밤하늘에 별보기가 그야말로 하늘에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습니다.

엊그제는 아는 교수님과 근교의 양태산에 다녀왔습니다. 서울로 치면 북한산 자락의 구기동 정도 되는 곳인데 참 공기가 맑았습니다. 중국인 교수도 감격스런 표정으로 "량쾅(햇볕) 헌 하오. 꽁치(공기) 헌 하오"를 연발합니다. 중국도 햇볕과 맑은 공기가 그리운가 봅니다.

북경 양태산의 모습 출처:다음 천진산사랑회까페



낮에 학교에 갔었는데 자전거 전용도로를 자동차들이 줄지어 주차해 있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요일 마치 여의도 순복음 교회 주변 도로에 주차해 있는 차량들이 생각날 정도로 많았습니다.

요즘은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아는 길도 연습 삼아 중국 사람들에게 길을 묻곤 합니다.

"런민따쉬에 자이 날?(인민대학교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면 아주 친절하게 손짓 발짓해가며 가르쳐 줍니다. 반쯤 밖에 못 알아듣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씨에씨에" 합니다.

일요일 저녁이라 지인과 시내에 나가서 식사를 했습니다. 지난번에 한번 갔던 우다쿠라는 곳입니다. 서울의 신촌같은 지역인데 한국 사람들이 참 많이 와서 즐기는 곳이기도 합니다. 한국 식당 한국 노래방 그리고 한국 슈퍼마켓도 있습니다. 제가 있는 곳에서 지하철로 세 정거장 정도의 거리입니다.

아침에 커피 한잔 먹는 습관이 있는데 커피가 없어서 한국 슈퍼에 들렀습니다. 한국의 동네 슈퍼처럼 한국 물건들이 없는 것 빼고는 다 있었습니다. 밤에 출출할 때를 대비해서 달걀 한판 라면 10개를 사 왔습니다.

무심결에 손에 잡힌 것이 신라면인데 얼른 삼양라면으로 바꿨습니다. 중국 주인에게 그 이유를 설명해주고 싶었는데 중국말이 짧은 것이 한스러웠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택시(추주처)를 타고 "칭 즈춘리 띠티에"라고 말하자 택시 기사가 알아들었다는 듯이 콧노래를 부르며 운전을 했습니다. "뚜어샤우치엔?(얼마입니까)?"라고 묻자 "쓰이치엔!"이라 대답하고 11원을 주면서 "쓰이치엔 쓰마?"라고 말하자 뜻밖에도 택시 기사가 "오우케이"라고 말합니다. 양태산에서 사온 호두를 까서 먹으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제 중국의 최대 연휴이자 명절인 국경절이 끝났습니다. 오늘부터 정다운(?) 친구들을 만나게 됩니다. 콩고에서 온 90년생 알버트가 제가 맘에 들었는지 자꾸 제 옆자리에 와서 앉으려 합니다. 얼굴이 아주 까맣고 눈도 커서 처음엔 약간 꺼려졌는데 밥도 같이 먹고 하니까 제일 친해졌습니다. 오늘도 아마 알버트랑 앉아서 공부를 할 것 같습니다. 세명씩 한줄에 앉는데 옆자리엔 미국 여학생과 러시아 세르게이가 번갈아 앉습니다.

미국 여학생은 우리 반에서 제일 예쁘장한 학생인데 아직 말을 못 트고 지냅니다. 러시아인 21세 세르게이는 아주 유머스런 친구입니다. 잘생긴 외모에 머리도 좋은지 공부도 잘하고 열심히 합니다. 뒷줄엔 우크라이나 비욜라입니다. 28세 여성인데 우크라이나에서 관광학을 전공하고 그 분야 일을 했다는데 <인생을 바꾸기 위해> 중국에 유학을 왔답니다.

알버트, 세르게이, 비욜라 그리고 저 이렇게 셋은 이미 한국식당에 가서 점심을 한 번 먹어서 그런지 더 친근감이 느껴집니다. 아직 모두들 중국어가 서툴러서 영어로 대화를 하는데 콩고의 알버트는 영어도 짧아서 꼭 다시 천천히 설명을 해 주어야 알아듣습니다. 지난번에는

"내가 엄마대신 공부하는 것 감시를 할 테니 열심히 공부해라"

고 했더니 고개를 절래절래 흔듭니다.

우리 반은 중국어를 전혀 모르는 완전 왕 초급반이라 교수님이 가르치는 것을 보면 마치 중국 유치원에서 어린 아이들 모아 놓고 가르치는 것 같을 겁니다. 그중에서 베트남에서 온 친구가 중국어를 배우고 왔는지 제법 중국말을 잘 합니다. 그래서 제 목포는 이 친구(콴)을 따라 잡는 것입니다.

몽고에서 온 학생(여자)은 얼굴이 너무 한국사람 같아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혹시 한국인이냐고 물었더니 전혀 아니랍니다. 몽고반점의 동질감을 느낍니다.

처음에 저에게 사탕을 하나 건네주며 제일 먼저 저에게 아는 척을 했던 러시아 여학생(18세)이 며칠째 결석을 했습니다. 부모님 생각하며 열심히 공부해야 하거늘 놀러 다니는지 수업을 자꾸 빼먹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이러쿵저러쿵 간섭할 수 있는 만큼 아직 친분이 쌓이지 않아서 그냥 안타깝습니다. 우리반에는 10개국의 학생들이 총 천연색 다국적을 가진 국제연합반입니다.

한번은 러시아 친구가 심각하게 질문을 했습니다.

"한국 사람은 왜 개고기를 먹느냐?"

순간 당황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짧게 말하고 전통 식습관을 이해시킬 수 있을까?

"한국은 애완용과 식용이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 한국인은 원숭이를 먹지 않고 말고기도 안 먹는다. 한국 사람은 원숭이를 먹고 말고기를 즐기는 나라의 식습관을 이해 못한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 검지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오케이"라고 말을 하더군요.

중국어 회화 교재에는 한국 한국인이 자주 등장합니다. 중국 다음으로 한국, 미국, 영국, 태국 순으로 이어지는데 이상하게 일본은 교재에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다행히 일본 학생은 없습니다.

중국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성조 싸움이랍니다. 중국말도 "한위" 한국말도 "한위"라고 하는데 중국말은 4성 한국말은 2성입니다. 받아쓰기(한자쓰기) 시간에는 저는 룰루랄라입니다. 서양인들은 한자를 쓰는 것이 아니라 낑낑대고 그리고 있습니다.

정서와 문화가 가깝다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같은 한자 문화권이라 글씨를 쓰는 것에는 큰 차이를 못 느낍니다. 서양인들은 뜻글자인 한자가 왜 저렇게 써야하는지 모르고 무조건 외워서 써야하니 얼마나 힘들고 괴롭겠습니까? 말과 글을 알아먹는 것 그것은 소통의 기본이자 이해의 출발점입니다.(1부 끝)


올려놓고 보니 너무 길어서 잘랐습니다. 나머지 글은 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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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청래입니다. 여기는 중국 베이징입니다.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라서 그런지 살갗을 때리는 빗방울이 제법 싸늘합니다.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그치고 나뭇잎 사이로 살랑 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가을 기운이 묻어납니다. 가는 여름이 심술을 부리는지 을씨년스럽게 부는 바람에 빗방울도 수직이 아닌 사선으로 우산 속을 파고듭니다.

중국은 봄가을이 없다고 합니다. 가을이 오는가 싶으면 어느새 겨울이 귀밑에 다가와 있다고 합니다. 10월이 대륙에 들어서면 얇은 옷 속으로 한기가 쳐들어 와서 감기를 옮기고 간다고 합니다. 대륙성 한랭전선이 베이징을 지나 평양을 지나 서울에 당도하면 베이징도 서울도 두꺼운 외투로 추위를 방어하며 종종 걸음을 치고 있겠지요.

어제 저녁 식사는 한국 유학생들과 중국 학생들이 즐겨 찾는다는 우다쿠(五道口)에 갔습니다. 북경대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대학원생과 인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선생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갔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은 즈춘리(知春里)라는 곳인데 세 개의 역을 지나니 서울의 신촌 같은 우다쿠가 나왔습니다.

모처럼 한국 음식을 먹자고 보쌈집에 들렀는데 2학기 개강 파티를 하는지 시끌벅적하며 건배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라지만 이미 북경은 자본주의 사회 못지않게 개방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개강 파티에서 선배가 후배들 챙겨주고 돈 내주고 하는 것이 보통 한국의 대학가와 다를 바 없는 것 같았습니다.

짧은 며칠이지만 중국의 대학 안에는 생기발랄하고 활기가 넘칩니다. 대학 안에 기숙사가 있고 대중목욕탕이 있어서 목욕하고 나오는 물기 가득한 대학생들의 모습이 약간 생경할 따름입니다. 제가 있는 인민대는 중국의 명문대학인데 학생들은 또 마치 고등학생들처럼 꽉 짜여 진 시간표로 움직이며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하는 모양입니다.

이수 학점이 160학점이고 3학년 때 대충 마치고 4학년 때 진로를 고민하기 때문에 수업 듣고 공부하느라 분주 한가 봅니다. 오늘은 아침 일찍 거류증을 받기 위한 필수 서류인 한국에서 발부받은 건강지단서를 중국 보건 당국에서 검증을 받았습니다. 그 확인증을 내고 첫 중국어 수업을 들었습니다.

약 20여명이 중국어 초급 수업을 받는데 교실 안은 그야말로 울긋불긋 총 천연색 피부 색깔입니다. 첫 날이라서 누가 누구이고 어느 나라 학생들인지 알 수 가 없습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왔고 언어는 다르지만 엄마에게 말을 배우는 아이처럼 한마디 한마디 중국말을 배웁니다. 한국말로 치면 "안녕하세요?. 엄마 아빠 1, 2, 3, 4...집이 어디예요?" 등등의 아주 초보적인 말들이지만 중국어는 단어보다 성조가 중요하므로 아무리 쉬운 단어도 그냥 지나치면 안 되겠더군요.

11시 30분 수업을 마치고 학교 내에서 도움을 받기로 한 인민대 2학년 학생이 교실 앞으로 오기로 했는데 보이 않았습니다. 그 학생도 11시 30분에 꽤 떨어진 건물에서 수업을 마치고 뛰어 오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베이징 하늘 아래에서 눈 빠지게 그 여학생을 기다리고 있는 제 모습이 어땠을까요? 멀리서 그 학생이 뛰어 오는데 어찌나 반갑던지...그러나 그 반가움을 입이 아닌 표정으로만 표현해야 하는 심정은 또 오죽했겠습니까?

이 학생과는 11시 30분부터 점심 같이 먹고 1시 30분까지 생각나는 것 궁금한 것 아무거나 물어보는 것이 수업입니다. 개인지도인 셈이지요. 가방 들고 학생식당에 갔습니다. 구름처럼 밀려오는 학생들 틈바구니에서 끼어서 이 학생이 타다가 주는 8원짜리 볶음밥을 먹었습니다.(한화 185원에 위엔화 1원이니 1500원 정도임. IMF때와 비슷해 중국의 한국 유학생들이 고통스럽다 하네요) 특유의 중국향 소스와 마늘잎과 줄기를 넣고 고추를 듬성듬성 썰어서 만든 일종의 김치볶음밥입니다. 맛있게 먹었습니다.

제가 만난 중국 학생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순수하고 때가 묻지 않았습니다. 이씨 성을 가진 이 학생은 밥 먹을 생각은 하지 않고 무엇이라도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려고 온통 긴장하는 빛이 역력합니다. 미안할 정도입니다. 밥을 먹다가 식당 벽에 붙어 있는 구호를 가르키며 물었습니다. 이 학생이 가르쳐 준 뜻은 이러 합니다. <동일세계, 동일 꿈>.

올림픽 현수막에 있는 <ONE WORID! ONE DREAM>. 이 현수막은 공사장 가림막에도 써 있고 길가의 깃발에도 새겨져 있습니다. 세계를 향해 야무지게 진출하는 중국의 속뜻이라 생각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세계의 중심이 자신들이라는 중화사상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라면 저의 지나친 억측일까요?

그 학생과 헤어지고 처음으로 혼자의 힘으로 30분 정도 걸리는 베이징의 거리를 걸어서 집으로 왔습니다. 얼굴 모양으로는 중국인인지 한국인지 구별이 안 갑니다. 그러나 베이징의 중심 거리를 초급 중국어 교재를 넣은 가방을 메고 걷고 있는 나는 분명 한국인입니다.

세계인구 중 5명중 1명은 중국 사람입니다. 13억(비공식 16억이라는 설도 있음) 인구가 쓰고 있는 언어, 13억 인구가 꿈틀대며 하나의 세계로 질주하고 있는 2008년 9월 22일. 대한민국의 가치는 무엇이며 대한민국은 어디로 무엇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가?

을씨년스럽게(이 말은 일본의 을사늑약이 있던 해의 비유어)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듯이 대한민국 국민은 얼마나 두꺼운 외투를 준비하고 얼마나 튼튼한 비바람에 찢어지지 않는 우산을 준비해야 하는 걸까? 어젯밤 우다쿠에서 밥을 먹고 나오는데 찢어진 우산 사이로 들여 치는 비에 바지가랭이를 흠뻑 젖고 난 후의 후회였습니다. 좀 더 튼튼하고 큰 우산을 준비해 올걸....

추신: 유모차부대의 눈물의 기자회견을 보았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전두환의 탄압이 있었기에 운동세력이 더욱 성장했다고 민주화를 성공시켰다는 역설이 있습니다. 학생탄압, 종교탄압, 언론탄압, 교과서 이념탄압에 이제 엄마탄압까지...우리의 승리가 어쩌면 더 빨리 오고 있다는 방증의 역설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곧 망할 겁니다. 질기게 견디기만 하면 저들의 무리한 헛발질로 우리를 전부분에서 똘똘 뭉치게 하지 않을까요? 이런 말도 있습니다.

 조금만 더 쳐 다오! 시퍼렇게 날이 설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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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혼자 외치는 구호;

<엄마탄압하면 불효자식되고, 국민탄압하면 명이박한 나라된다!!> #명(命)이(李)박(薄)한나라

 

여러분 사랑합니다. 짜이찌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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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청래입니다. 여기는 중국 베이징입니다. 조국을 떠나온 지 이틀밖에 안 되었는데 시공간의 차이가 커서 그런지 꽤 오래 된 느낌입니다. 인천 국제공항 출국장을 난생처음 혼자 빠져 나오면서 참으로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지금까지는 해외여행객들 틈에 끼어 가이드를 따라 가거나 현역시절 프리패스로 안내받으며 출국을 했는데 이제 모든 수속을 혼자 해야 합니다.

국회의원 4년 동안 혼자 할 줄 아는 것이 점점 줄어들어 바보가 된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낯설고 물 설은 이국땅에서 나는 과연 잘 살 수 있을까? 하물며 중국에서는 말 못하는 벙어리요 앞 못 보는 장님신세인데 내 앞가림인들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을 하는 사이 탑승 2시간 만에 중국에 도착했습니다. 중국에서의 첫발은 올림픽을 위해 새롭게 대규모로 지은 공항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아차하면 국제 미아가 될 수도 있습니다.

두려움 속에 베이징 공항에 도착해 앞 사람을 졸졸 따라 가고 있는데 뜻밖에도 저를 아는 분이 다가 왔습니다. "정청래의원 이시죠? 아고라에서 출국 소식을 읽었는데 같은 비행기를 탔네요. 힘내세요. 건강하세요." 가끔 어디선가 저를 알아보고 힐끔힐끔 쳐다보는 분들은 많지만 이렇게 다가와서 친절하게 인사를 하는 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참 고맙고 반가웠습니다. 친구 분 잘 만나고 건강히 돌아가십시오.

오늘 미리 얻어 놓은 아파트를 주소지로 파출소에서 가서 거주지 신고를 했습니다. 이 거주지 신고서를 인민대학교에 제출하면 체류허가증이 나오고 그 때부터 반쯤은 중국인이 되어 이 공간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어제는 저를 초청해 준 인민대학교에 갔는데 이 곳에도 따뜻한 인간의 정이 있습니다.

예전부터 잘 아는 교수님이 자전거를 선물해 주셨습니다. 아파트에서 학교까지는 도보로 20분 정도 걸리는데 자전거를 타고 가보니 10분정도에 주파를 하더군요. 중국은 수도 베이징이지만 어디나 자전거 도로가 있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애용합니다. 자전거를 선물 받고도 감사의 표현을 잘 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씨에씨에"라고 할 수 밖에요.

답답합니다. 말을 못하니 모든 것이 소극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여 어젯밤에는 한국에서 가져 온 중국어 초급 과정 책을 테이프와 함께 4시간 정도 눈알이 빠지도록 듣고 보았습니다. 오늘 개인지도 할 중국인 학생을 만나기로 했거든요. 몇 문장을 통째로 외워서 만났습니다. "니하오마? 헌 하오. 워 예 헌하오." "니 빠바 마마 선티하오마? 씨에씨에 워먼 또우 헌하오. 타먼 헌하오. 짜이찌엔" "니 꽁주어 망마? 워 뿌타이망"....

점심을 먹고 대화하고 또 저녁 먹고 첫 대면에 7시간을 이 중국 대학생과 함께 있었는데 다행히 이 학생은 한국말을 배우는 학생이라 간간이 제가 한국말을 가르쳐 주었더니 좋아라 하더군요. 이 학생한테 배워서 화장지 3개를 처음 사 보았습니다. 얼마예요(뚜어 쌰오치엔?)라는 말을 처음 사용해 보았는데 주인이 알아들었는지 "지우위엔(9원)"이라고 해서 10원을 주고 1원을 거슬러 받았습니다.

아내가 사준 노트북으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아파트에서 나갈 때와 들어 올 때 어김없이 인터넷 뉴스를 봅니다. 이틀간의 소식이지만 모두 우울한 국내 소식뿐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참 한가하게도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 자문을 해 봅니다.

미국은 미친 듯이 공적자금을 쏟아 부으며 금융위기를 모면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군요. 사후 약방문식 땜질 처방을 믿고 한국 주식 시장이 안정이 되었다는 돼 먹지 못한 기사들도 눈에 뜨입니다.

경찰은 유모차부대까지 수사를 하며 가히 촛불 외상값을 받으려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야당은 영수회담이라는 데코레이션 장식물로 철저히 이용을 당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렵습니다. 방송 장악을 통한 언론의 장악과 탄압은 이제 새삼스러울 것도 없습니다. 그나마 YTN 노조가 잘 싸워주어서 다행입니다.

YTN이 마지막 전투의 보루입니다.

회사 규모는 KBS 보다 작지만 현재로서는 KBS의 의미보다 더 큰 상징입니다. 상징이 살아 있으면 언젠가는 그 상징이 일반화 됩니다. YTN을 위해 싸우는 노조원들을 지키는 지킴이가 되어야겠습니다. KBS도 잘 지킬 수 있었는데 내부의 동력이 없으니 허망하게 무너졌습니다.

KBS 현 노조는 언젠가 역사의 심판대에 설 것입니다.

4월 9일 총선 직전에 문화와 조선의 저에 대한 허위 날조기사로 인한 정치보복 사건 아시죠? 제가 반론보도 청구소송도 이겼구요. 서울 중앙지법에서 "50포인트 고딕체로 제목 <반론 보도문>을 실어라!" 그런데 이 판결에 불복해서 조선은 강제집행중지 가처분 신청을 했고 재판부가 받아 들였습니다.(8월 30일부터 이 기사를 실지 않으면 조선일보는 매일 저에게 100만원씩 납부하게 되어 있는데 8월 27일 가처분 판결로 강제 집행 불이행금은 공탁금 3000만원을 걸고 잠시 보류되었습니다.)

그런데 문화일보는 어리버리 해서 8월 29일 안에 강제집행중지 가처분 신청을 이끌어 내지 못해서 8월 30일부터 적용되는 강제집행일이 11일 지난 9월 12일에나 강제집행중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냈네요. 항소심과 관계없이

문화일보는 공탁금 5000만원을 걸고 AM7것 까지 매일 200만원씩 2200만원은 일단 제 통장으로 입금을 해야 합니다.

2200만원 안 주면 문화일보 사옥 경매신청을 진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문화일보가 더 이상 버티고 저에게 돈을 안 줄 명분은 없습니다. 더 이상 편법에 기대어 요리조리 빠져 나갈 구멍도 없습니다. 중국에 있지만 불의한 언론의 탈을 쓰고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 집단과의 싸움은 멈출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앞으로 1주일에 1~2회씩 가끔 중국에 대한 일상적인 글을 올리겠습니다. 몸은 중국에 있지만 자꾸 국내 소식에 눈이 더 빠른 속도로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원초적 본능인가 봅니다. 조국 밖에서 좀 더 냉철한 눈으로 조국을 보겠습니다. 지금 떠나 있어서 여러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귀국 후 두세 배로 더 열심히 보답하겠습니다.

중국에서 혼자 외치는 구호

경찰도 엄마있지? 엄마 탄압 중단하라!!!

 

여러분 사랑합니다. 짜이찌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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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중국으로 떠납니다.


안녕하세요. 정청래입니다. 무슨 말을 할까요? 제가 지금부터 드리려고 하는 말씀이 약간 두렵기도 합니다. 조국의 현실이 민주주의가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는데 너는 어디서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 국민들은 못 살겠다고 아우성치는데 미국발 금융위기가 쓰나미처럼 한국을 덮쳐 패닉상태인데 너는 어디서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 착잡합니다.

국회의원에 떨어지고 나서 정말 여러분들은 저에게 너무도 큰 위안이 되어 주셨습니다. 낙심해서 세상 원망하고 신세한탄이나 하며 보냈을지도 모르는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국민들은 참으로 위대하고 훌륭했습니다. 여러분들과 시청에서 광화문에서 KBS 앞에서 가슴으로 만난 몸뚱이로 말했습니다. 여러분들과 깊은 정도 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쳐진 제 어깨를 토닥이며 저에게 촛불을 들라고 명령해 주셨습니다. 5월 29일까지 임기를 마치고 나서도 여러분들이 있었기에 정말 현역 국회의원일 때보다 더 바쁜 나날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촛불을 통해 희망을 보았습니다. 쓰려져 있었던 저를 일으켜 주셨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와 민주주의가 먹고사는 경제 문제가 모두 여러분들의 힘에 의해 개척되어 간다는 평범한 사실을 다시한번 배우고 깨달았습니다. 국민이 스승이고 주인이다.

그런데 저는 잠시 여러분 곁을 떠나게 됩니다. 죄송합니다. 저 중국에 갑니다. 중국 베이징 인민대학교에 1년 과정 방문학자 자격으로 공부하러 갑니다. 몇 달 전에 준비한 것이지만 최종적으로 방문 허가를 받고 참 많은 번민을 했습니다. 조국이 이 지경인데 꼭 떠나야 하는가? 촛불을 들었던 동지들 국민들이 눈에 밟힙니다. KBS 촛불들과 추진하던 많은 계획들은 뜻있는 분들이 할 것으로 믿습니다. 오체투지를 하고 계신 수경스님과 문규현 신부님, KBS 촛불들...참 많이 미안합니다.

원래 8월 말에 출국을 해야 하는데 1개월을 미뤘습니다. 주변의 동지들과 조심스럽게 상의를 했습니다. 처음엔 찬성과 반대가 엇갈렸습니다. 며칠 전에 주변 동지들과 허심탄회하게 솔직하게 상의를 했습니다. 출국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오는 것이 어찌 시한폭탄처럼 두려웠습니다. 결국 주변 분들이 잘 다녀오라는 격려의 말씀들을 많이 해 주셨습니다.

미국이 아닌 중국에 가는 이유는 이러 합니다. 미국 중심의 세계가 중국을 축으로 분화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떠오르는 용으로 중국이 부상할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 대륙의 한 귀퉁이의 휴전선의 철조망에 가로막힌 섬나라가 아니라 대륙의 일원으로 동참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미래상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통일된 대한민국으로 가기 위한 장애물을 제거 하는 것 그것이 저는 애국애족이라 생각합니다.

중국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을 아는 사람과 미국 코드에 맞추는 전문가는 넘쳐납니다. 그러나 정작 더 중요할 수 있는 중국에 대해서는 그런 전문가들이 많이 부족합니다. 중국을 알아야 하고 중국과 교분을 쌓는 것 그것이 개인의 재산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의 재산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중국을 아는 핵심 지름길은 중국말을 하고 중국 속에서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생활양식을 공유해 보는 것이 저는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로지 6개월 동안은 하루에 8시간 이상 중국말을 배우려 합니다. 그리고 나면 아마 인민대학교에서 교수 자격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강의를 하게 됩니다.

북경대에서 한국어를 50년 강의한 위욱승 교수라는 분이 계십니다. 위교수 제자들이 현재 모두 중국의 전 대학에서 한국어 교수가 되었습니다. 현역 시절 북경대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이 제자 교수들이 저를 찾아와 “우리 스승인 위욱승교수님 소원하나 들어 주십시오. 대한민국을 위해 50년간 노력했는데 대한민국 대통령 훈장 하나 받게 해 주십시오.”

결국 전례가 없었던 것을 새로 만들어 2005년 10월 9일 한글날 기념식 때 TV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중국인인 위욱승교수는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 대통령 부관문화훈장을 받았습니다. 80이 넘은 노교수께서 저를 끌어안고 어린 아이처럼 좋아했습니다. 그 순간 제가 국회의원 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위교수는 한국 중국 통 털어서 퇴계 이황선생 전문가입니다. 곧 위교수가 쓴 이황 전집이 출간 된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중국에 이런 영향력 있는 분들이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저는 그것이 애국 외교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휴전선이라는 철조망에 가로막힌 섬나라를 탈피해 대륙으로 뻗어나가는 데는 중국의 협조가 받듯이 필요합니다. 서울을 출발한 기차가 평양을 거쳐 베이징을 거쳐 파리까지 가는 일 그것이 우리의 미래비젼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위해 매진해야 합니다. 손기정 선수가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베를린 올림픽에 가서 마라톤 금메달을 땄던 역사적 사실을 현실로 변화시켜 내야 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조국 안에서 조국을 보았습니다. 이제 잠시 사랑하는 조국 사랑하는 여러분 곁을 잠시 떠나 조국 밖에서 조국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몸은 떠나지만 마음만은 두고 갑니다. 몸이 떠나 있어도 여러분들을 만나는 일은 소홀하지 않겠습니다. 허락하실지 모르지만 저는 여러분들이 파견한 베이징 특파원입니다.

베이징에서 바라 본 조국, 중국에서의 한국에 대한 생각들을 숨김없이 베이징 특파원 자격으로 글을 쓰겠습니다. 낙선 이후에 그랬듯이 중국 베이징에서 외롭고 쓸쓸할 때마다 조국에 있는 여러분들을 생각하겠습니다. 그리고 힘을 내서 열심히 생활하겠습니다. 여러분 내일 오후 중국행 비행기를 탑니다. 여러분들의 눈망울을 기억하겠습니다.

 

다음부터는 중국 베이징 특파원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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